

총평: ★★★★★ (5/5점)
리처스 도킨스의 명저.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동작 원리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유전자라는 관점에서 명쾌하게 풀어냈다. 비교적 두껍고 내용이 쉽지 않아 읽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2달 정도), 읽다가 흥미를 잃을 정도로 지루한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다.
난 평소에 인간이 어떤 원리로 행동하는지, 어째서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면 행복한지, 사랑, 기쁨, 슬픔 같은 감정은 대체 무엇인지,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분명히 인간(또한, 모든 생명)의 행동양상엔 어떤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 호기심이 극에 달할 때 쯤 나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기 시작했고, 어렴풋이나마 짐작했던 내용들을 이 책을 통해 더욱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 사람들 중엔 정말 낭만적이지 못한 내용 때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내 경우는 짐작하던 바가 있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아니었고, 갑자기 이 책을 접한 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귀에 대고 "낭만은 없다" 라고 말해준 격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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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목: 이기적 유전자
출판사: 을유문화사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분량: 630p
난이도(Easy / Normal / Hard): Hard
추천 여부(Yes / No):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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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
자기 복제자와 운반자
생명체로서 일반적으로 외부에 드러나는 단위는 "개체"이며, 개체란 우리같은 사람, 개, 민들레, 돌고래 같은 것들을 말한다. 즉 양선규는 하나의 개체고, 우리집 동이(말티푸)도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종이 같더라도 양선규, 김철수, 박명자는 각각 다른 개체다.
개체는 사람들의 눈에 띄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연선택의 기준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리고 유전자라는 것은 개체가 번식하기 위해 필요한, 즉 개체가 소유한 번식을 위한 무언가로 인식되어 왔고, 실제로 그렇게 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태초에 바다에서 여러가지 유기물질이 랜덤하게 합성되어 "자기 복제자"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사본을 만드는 능력을 가졌고, "유전자"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어떤 자기 복제자는 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사본을 만들 수 있었고, 또 어떤 자기 복제자는 사본을 만드는 속도는 느렸으나 그 정확도가 높았다. 자기 복제자들은 자신의 사본을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동시에 그 사본을 어떤 방식으로 만드느냐에 차이가 있었다.
결국 바다에는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의 사본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자기 복제자들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 복제자들은 서로 속고 속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더 정확히는 사본을 만드는 행위를 더 잘 해내기 위한 세포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단세포, 다세포를 거쳐 지금의 사람, 고양이 같은 형태가 된 것이다. 즉 "운반자"라 한다. 각각의 자기복제자들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운반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결국엔 사본을 만들기에 최적화된 운반자를 만드는 자기 복제자들이 바다의 주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 복제자는 자신의 사본밖에 만들 수 없는데, 어떻게 점점 변화하고 발전한 것일까? 답은 "돌연변이"이다. 자기 복제자의 복제 능력은 매우 정확하지만, 아주 가끔 오류가 생기며 이것을 돌연변이라 한다. 돌연변이는 자기 복제자의 복제 행위에 이득이 될 수도 있고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수많은 자기 복제자들이 계속해서 사본을 만들며 돌연변이가 발생했고, 점점 다양한 종류의 자기 복제자들이 생겨났다. 이때 복제에 유리한 돌연변이를 가진 자기 복제자들이 결과적으로 더 많이 생존하게 되었는데, 이런 유리한 돌연변이를 진화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의도"가 없다. 그저 끝없이 복제하다가 돌연변이가 생겼고, 결과적으로 복제에 유리하게 진화한 자기 복제자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다. 결과적으로 효율적인 자기 복제자들이 살아남았을 뿐이지, 자기 복제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진화의 방향을 선택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저 의도치 않은 돌연변이에 의해 변화했고, 결과적으로 유리하게 진화한 자기 복제자가 많이 살아남았을 뿐이다.(자연선택설)
정리하면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이며, 개체는 운반자다. 개체는 유전자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우리는 모두 유전자라는 놈의 지시대로 코딩되어 움직이는 기계인 것이다. 물론 인간의 행동양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오직 유전자뿐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개체는 유전자에게 어느 정도 거역할 수도 있고 "문화"라는 후천적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 더 깊게 말하면 정말 끝도 없어서, 일단 여기까지만 하겠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이 질문은 매우 모호해서 답하기 어렵다. 일단 유전자 관점에서 보자면, 유전자는 이기적인 게 맞다. 유전자의 목적은 자신을 복제하는 것 뿐이며, 다른 유전자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복제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것에 의도가 있든 없든 말이다.
그럼 인간이라는 개체 관점에서 보자. 유전자는 이기적이니까, 더 효율적인 유전자 복제를 위해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기계도 이기적이어야 할 것만 같다. 사실, 결과론적으로는 맞다. 그런데 인간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심심찮게 관찰된다. 왜 그럴까?
유전자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사본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더 정확히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유전자가 자연선택된다). 만약 그 방법이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해도 말이다. 예를 들어 엄마와 자식 3명이 있다고 해보자. 엄마 유전자가 1이라고 하면, 각각의 자식은 엄마 유전자의 절반(0.5)를 갖고 있다. 엄마 입장에서는 자기 유전자 절반씩을 갖고 있는 자식 3명을 키우는 것, 즉 자식을 키우는 이타적 행위가, 자기 자신만을 챙기는 이기적 행위에 비해 이득인 것이다. 왜냐? 자식 3명은 자기가 가진 유전자 1에 비해 50% 많은 1.5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유전자 관점에서는 3명의 자식을 키우는 것이 당연한 행위인 것이다. 심지어 성장한 자식들이 또다시 번식할 것을 생각하면 그 이득은 더욱 크다.
자식을 키우는 행위가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기 유리하기 때문에, 그러한 유전자가 자연선택되어 후대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여기서 "자식을 소중히 키우는 유전자"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지칭할 순 없지만, 아마도 어린아이를 보면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유전자(그런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던가) 따위의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될 때 드는 느낌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타적인 유전자, 이타적인 개체는 분명히 있다. 다만 "이타적이기만 한"건 존재할 수 없다. 왜냐면 그런 유전자는 진작에 멸종되어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이타적인 유전자는 그 드러나는 행위가 이타적일지언정,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이기적인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인간은 이기적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 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타적인 인간도 결국 종지에 자신의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이타적인 행위를 중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행위라는 것은 이기적인 이득을 얻기 위한 중간단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아마 그런 이유는 딱히 없을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 슬픔, 사랑, 생존본능 같은 것들도 결국 유전자가 자신을 더 많이 복제하기 위해 개체에게 부여하는 어떠한 작용일 테니까 말이다.
인간이 유전자라는 놈에게 이용당하는 기계 따위일 뿐이라면, 살아가야 하는 이유 같은 건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논리적으로 그런 것만 같다. 우리가 지금 당장 자살한다고 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건 유전자이지, 인간이라는 개체가 아니다. 슬퍼할 사람도 엄밀히는 인간이 아니라 슬퍼하는 인간을 구성한 유전자다. 그런데 그게 중요할까?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감정이 어디서 온 것이든, 누가 부여하는 것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울고, 웃고, 절망하고, 환희에 차고, 사랑을 느낀다. 그 이유가 어떤 호르몬이든, 신경전달물질이든, 유전자에게 조종당하는 것이든 뭐든 간에 우리가 느끼는 건 적어도 우리 입장에서는 진짜다.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라는 것도 비슷한 결론에 이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진짜가 아닐 확률이 99.99999...% 라고. 즉 가짜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을 피부로, 현실로 느끼고 있다. 진짜와 가짜? 도대체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가? 진짜와 가짜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냥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자고. 진리를 파헤치는 건 취미로 남겨두고,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집중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