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정글/회고

입소 55일차, 대망의 PintOS 프로젝트 시작

양선규 2024. 5. 1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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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입소 후 55일이 지나 3일 전 목요일부터 PintOS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이젠 정글의 일상에 적응할 대로 적응해서 크게 힘들거나 하는 건 없다. 아니 물론 힘들긴 하다. 하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닌 수준이다.

 

지난 주 webproxy 주차는 나름 나쁘지 않은 성과였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해 web server만 만들고 메인 과제인 proxy서버를 구현하지 못 해서 아쉬움이 남았다. 구현하지 못 한 게 아니라 접근조차 못 했다. proxy 전 과제인 tiny web server 를 끝낸 후 복습하면서 블로그에 정리 글을 올렸더니 이미 수요일이 끝나 있었다. 이틀.. 아니 딱 하루만 더 있었더라도 proxy서버까지 끝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webproxy 주차가 가장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tiny web server 일부

 

시간 관리를 잘 하지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목요일 발제 직후는 다음 주 목요일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설렁설렁 하는 느낌이 분명히 있다. 목, 금, 토 설렁설렁 하고, 일요일은 쉬는 날이니 설렁설렁 하고. 그 후에 월요일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져 열심히 하는 느낌. 지난 주를 되돌아보면, 목금토일에도 집중해서 빡세게 했다면 proxy까지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고 다수의 생각이다. 모두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또한 시간이 지날 수록 동기들과 점점 친해지고 편해지고 재밌어진다. 마치 고등학교 반 분위기 같은 느낌도 나고 나름 재미있다. 다들 비슷한 목표를 가져서인지, 아니면 어리지 않은 나이라서인지 모르겠지만 특별히 분위기를 헤치는 사람도 없고 다들 정말 착하고 잘 통한다. 다만 친해졌기 때문에 잡담을 하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긴 했다. 정글 초반에는 정말 거의 대화하지 않고 밥만 먹고 빡집중해서 코딩만 했다면, 지금은 중간중간 시끄러워질 때도 있고 그렇다. 물론 점심, 저녁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코딩 관련된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스스로 잘 학습하고 있는지 항상 생각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느꼈다. 코어타임 이라는 시간이 있는데 하루에 꼭 한번씩은 팀별로 배운걸 공유하고 서로 알려주는 시간이다. 초반엔 팀별로만 간결하게 하고 끝나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모두 친해지다 보니 다른 팀 코어타임에 가서 참여하고 듣고 하는 경우가 매우 잦아졌다. 물론 나도 그렇고. 근데 이렇게 하다 보니 7시에 시작하는 팀, 8시에 시작하는 팀, 9시에 시작하는 팀... 이렇게 시간이 나뉘어 져서 우리팀 코어타임 했다가 옆 팀 코어타임 가고, 또 끝나면 저쪽에서 뭔가 대화하고 있으면 또 가서 끼고. 이런 식이 되다보니 7시쯤부터 10시쯤까지 계속해서 떠들썩한 상태가 지속되는 일도 빈번했다. 

 

물론 코어타임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알파이지 메인이 아니다. 메인은 스스로 하는 공부이며, 코어타임은 그걸 확인하고 공유하는 시간일 뿐이다. 남의 얘기를 들으면 분명 도움은 되지만 그것만으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다른 팀 코어타임에 참여하느라 정작 내 공부를 못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난 공부를 하려고 가는 것인가, 아니면 공부하기 싫어서 내 맘 편하자고 가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공부를 한다는, 코어타임을 한다는 핑계로 그저 난 놀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스스로 절제하기 시작했다. 대화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도 꾹 참고 내 공부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근데 이것도 나만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실제로 PintOS 주차가 시작된 며칠 전 부터는 분위기가 꽤 정숙해졌다. 역시 정글에 온 사람은 다들 대단한 것 같다. 메타인지가 뛰어나고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듯 하다.

 

PintOS 주차가 시작되고 영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미완성된 PintOS 코드를 받고 여기에 뭔가를 추가하거나 수정하여 개선하는 게 주된 작업인데, 함수명과 주석이 전부 영어로 되어 있으니 영어가 아예 안 되는 나는 남들보다 이해가 훨씬 느리다. 또한 코드만이 아니라 정글에서 제공한 PintOS 프로젝트에 관한 GitBook이 있는데 이것도 전부 영어고, PintOS과제에 대한 설명이 있는 kaist 교수님이 올려놓으신 강의가 있는데 이 강의도 영어다. 말씀도 영어로 하시고 강의자료도 영어다........

 

강의자료 일부. 전부 영어다

 

난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 한다. 읽지도 못 한다. 영어 9등급이었다. 하지만 이 강의는 매우 중요하다. 무조건 봐야 된다. 안 보면 진행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아니 불가능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몇 배는 걸리겠지. 정글이라는 시간이 한정된 곳에선 필수로 봐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하고, 강의자료 텍스트를 긁어 GPT한테 물어보고, 파파고에게 물어보고, 또 강의자료를 캡쳐해서 코파일럿에게 물어보는 것 뿐이다. 그걸 정리해서 나만의 강의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남들보다 느려도.. 어쩔 수 없다.

 

일일이 해석해서 따로 정리해야 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기본적인 리딩정도는 할 수 있는 것 같다. 워낙 명문대 출신도 많고 내로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곳이니, 기본적인 영어는 다들 되는 것 같다. 그래서 PintOS가 시작된 목요일 금요일엔 굉장히 우울했다. 남들은 강의 보고 자료 보고 금방 이해하고 코딩 들어가는데 나는 하루종일 강의자료 복사해서 GPT한테 물어보고나 있으니. 너무너무 답답하고 우울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28년을 살면서 이번만큼 학창시절에 공부를 안한 게 후회된 적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의자료를 복사해서 GPT한테 물어보고 번역기를 돌리느라 많이 느리다고는 해도 진전이 조금씩은 있다는 것이다. 다들 열심히 하시겠지만 나는 영어 때문에 이번에 더욱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니 그래도 중간정도는 가고 있는 것 같다. 완전히 뒤쳐지지 않는 게 어디인가... 과제를 이해하고 도전할 기회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입소 초반에 원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알고리즘, C언어 프로젝트, PintOS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만의 무기 갖기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완전히 날라다닐 것이라고. 그때는 그냥 하신 말씀이겠거니 생각했지만 PintOS 프로젝트를 이제 막 시작한 지금 벌써부터 역체감이 느껴진다. 무슨 말이냐면, 최근에 Spring 교재를 사서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나의 다른 글을 봤다면 알겠지만 난 Spring이 너무너무너무 어렵고 자바도 너무너무너무 어려워서 정말 하기 싫었고 어떤 보이지 않는 벽마저도 느껴졌었는데, 지금 Spring 교재를 보면 정말 너무너무 친절하게 쓰여있고 너무너무 이해하기 쉬워서 재미가 느껴지고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을 정도이다.

 

정글에서 진행한 과제들은 전부 정답이 없고 스스로 해결해야 했으며, 참고할 책인 CSAPP책은 영어가 원서인데 정말이지 번역이 매우 끔찍하게 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마이너스 2천만 퍼센트라 1시간에 1장을 이해하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매우 불편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다가, 정말 가독성 좋게 친절하게 쓰인 스프링 책을 보니 매우 귀엽게 느껴졌다. 모래주머니를 온 몸에 달고 달리다가 그걸 한번에 다 떼고 달리는 기분.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지금까지 정글에서 공부했던 것에 비하면 깊이도 얕고 굉장히 쉽다. 공부한 게 완전히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은 적지만,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스프링이 왜 이런 구조를 가졌는지, MVC패턴을 왜 쓰는지, 왜 이렇게 구현하는 것인지.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뭐랄까 방향성과 큰 그림이 보이고 있다.

 

끔-찍
친-절

 

어쨌든 벌써부터 역체감이 느껴지니, 가장 어려운 PintOS 프로젝트를 끝마치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두려우면서도 크게 기대된다. 저번 주 webproxy 주차처럼 미련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PintOS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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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을 포기하고 개발로 전향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잘 한 선택이라고 느끼고 있으며, 정글에 온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잘 한 선택이라고 느끼고 있다. 나는 좋은 선택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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