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AI는 내 인생 첫 번째 회사이다.
인턴으로 취업하여 한 달의 인턴기간을 거치고, 정직원이 되어 한달 반을 일하고 3번의 월급을 채 받지 못했을 때 나는 실직했다. 실력이 형편없어 짤린 것도 아니고 고된 업무를 버티지 못해 스스로 퇴사한 것도 아니다.
우리 회사는 꽤 큰 모기업이 있는 자회사였다. 모기업은 병원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회사인데, IT쪽도 발을 들이고 싶어 메멘토AI라는 자회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메멘토AI의 대표님이 고용되고, 또 나머지 직원들이 고용되어 일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고, 생긴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굉장히 바빴다. 최대한 빠르게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최근까지의 회사 방향성이었고, 그렇다 보니 코드 퀄리티의 문제라던가 자잘한 오류, 이슈들이 잦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잘 해결되고 있었고 내가 느끼기엔 우리의 서비스가 오히려 점점 안정적이어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그러나 지난 수요일,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데이터베이스와 인프라 관리를 사수분에게 인수인계 받고 기대에 차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와중, 갑작스런 대표님의 전 직원 호출이 있었다. 생일자 축하 파티를 제외하고는 회사의 모든 인원이 모이는 일은 드물었기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메멘토AI의 폐업 선언과 대표님의 우리를 향한 사과였다. 폐업에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모회사로부터 폐업 절차를 진행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예고도, 낌새도 없었다. 전해듣기론 모회사는 아무런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갑작스레 폐업 절차를 밟으라고 했고, 현재 우리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실제 사용자들이 적지 않음에도 당장 업무를 전면 중단하고 준비해 둔 배포도, 인수인계서도 작성하지 말라는 명령이었다고 한다.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폐업명령에 우리도 어이없었지만 대표님은 또 얼마나 황당했을까. 우리에겐 대표님이지만 모회사 입장에서는 우리와 같은 직원일 테니.
단 몇시간 전만 해도 기대에 부풀어 머리를 싸매고 일하고 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사직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그런 갑작스런 실직 상황에서 내 손으로 사직서를 작성하면 불리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땐 몰랐지. 그날 바로 전 직원이 모든 업무를 중단했고, 짐을 정리하고 떠났다. 다만 이런 상황에도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원래 퇴사 생각이 있던 사람도 있겠고 그냥 회사에 딱히 미련이 없는 사람도 있고 하겠지만, 뭔가 나만 극단적으로 멘탈이 나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혼자 오바하는 건가 생각도 들고, 또는 다른 사람들이 굉장히 어른스러워서 힘듦을 겉으로 티내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난 굉장히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
나의 취준기간은 길었다. 노래를 하다가, 정보보안을 하다가 개발로 전향하여 몇 달간 정글에서 개고생을 하고 운이 좋게 28살 끝자락에 메멘토AI에 취업했다.
취업준비 당시엔 돈이 없어서 사고싶은 옷, 먹고싶은 음식, 갖고싶은 것들을 전부 참았었다. 옷은 1년에 한번 살까 말까 했고 비싼 장비들이나 내가 갖고싶은 모든 것들은, 정말로 없으면 살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난 내가 정말 초라하게 느껴졌고, 당시 그런 나의 초라함을 장작 삼아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과 분노로 만들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몇 년간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해 겨우 사회에 기어 올라 와, 받은 월급으로 사고싶은 옷을 사고, 파마를 하고, 가족들에게 용돈을 드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거의 모든 것들을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내 결핍은 채워지고 있었고 자존감은 올라가고 있었으며, 취업이라는 작은 목표를 달성했으니 더 큰 목표를 꿈꾸며 자기계발을 위해 운동, 독서까지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그냥 허무하게 사라졌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퇴보한 건 사실이고, 다시 취업 준비를 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다. 물론 힘들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것을 다시 장작 삼아 이 억울함과 분노를 풀기 위해 더 노력하겠지. 결과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 짧은 사회생활은 나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절대 손해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감정이 이런 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회사에선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고작해야 인턴 1달과 정직원 1달 반 이었지만, 첫날부터 바로 실제 업무를 받았고 즉시 개발에 들어갔기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알찼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프로젝트 구조도 모르고 깃도 잘 못쓰고, 컨벤션이 뭔지도 모르고, 정말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 형편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본 프로젝트는 정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휘갈겨 쓴 코드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하나 뿐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하다. 다들 기본적으로 프로젝트 3개 이상씩, 많으면 10개 가까이 해본 사람도 있는 듯 했다. 초반엔 동기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다. 참 다양한 경험을 했고 참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실제 업무를 해보니 예전엔 엄두도 못 냈던 개인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입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수요일에 폐업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금요일까지는 회사에 출근해서 자유롭게 개인 짐이라던가 데이터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금요일에 혼자 마무리를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잠깐 대표실로 따라와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키보드를 주셨다. 심지어 엄청 비싼 거... 사실 그 키보드는 예전에 내가 키보드가 고장나 맥북 키보드로 작업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왜 키보드가 없냐고 물으셔서 고장났다고 말씀드리니 빌려주셨던 거였다. 폐업 이후로 돌려드렸었는데 이번엔 정말로 주신 것이다. 대표님은 따로 투자회사를 하나 운영하시는데, 이어지는 첨언으로 우리 동기들이 입사할 때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고(약속은 아마도 : 우리는 무조건 성공할 것이고 성과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였던 것 같다), 상황이 정리되면 나를 꼭 다시 부르겠다고 하셨다. 길어도 한두달이 안 걸릴 것이고, 키보드는 그에 대한 약속이라고... . 대표님의 그 말씀은 정말 백퍼센트 진심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고, 진심이었지만 후에 상황이 맞지 않아 약속을 지키지 못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추후 약속을 지키고 말고를 떠나, 난 그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난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대표님의 방향성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빠르게 개발하여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코드의 퀄리티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과, 늘 말에 근거와 확신이 있는 것. 그리고 AI에 대한 의견들까지. 그래서 약간의 존경심도 있었다. 내가 미래에 성공한다면 저런 모습일까? 라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만약 불러 주신다면 반드시 가고 싶다. 나도 돈과 경제, 그리고 투자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개발을 하며 자연스레 투자공부 까지 된다면 단순 개발 실력 향상을 넘어 훨씬 복합적이고 큰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경제력을 이루기 위한 방법 중, 가장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이 투자라는 생각도 최근에 많이 했다. 나머지로 생각해 본 건 대기업 임원과 개인 사업에서의 성공인데... 리스크가 크기도 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투자는 당장에라도 시작할 수 있기도 하고 노력에 따라 수익률도 유의미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기투자를 얘기하는 것이다.
다시 광주로 내려가 취업 준비를 하며 개인 프로젝트를 해보려 한다. 스택은 스프링과 리액트로. 스프링을 선택하는 이유는 프레임워크와 언어는 도구일 뿐이지만, 스프링을 잘 다룰 경우 다른 웬만한 프레임워크와 언어는 잘 다룰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이고, 난 백엔드이지만 프론트까지 하려는 이유는 늘 제대로 된 개인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방향성과 도메인에 대한 이해, 프론트엔드, 백엔드의 이해, 데이터, 인프라에 관한 모든 것들을 내가 100% 이해한 상태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다. 며칠 전 괜찮은 회사를 소개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걸 해보고 싶어서 정말 감사했지만 거절했다. 당분간 개인 프로젝트, 코딩테스트, 면접 준비를 하면서 다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서울엔 좋은 차가 참 많다. 특히 내가 일하던 삼성역, 봉은사역 부근에는 비싼 차가 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난 차를 좋아하기에 골목보다는 일부러 큰 도로쪽으로 가며 차를 구경하기도 한다. 다만 요새 너무 바쁘기도 하고 매일 좋은 차를 너무 많이 봐서 조금 무뎌졌었는데... 실직하고 난 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성공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져서 좋은 차를 볼 때마다 미칠 것 같더라. 내가 타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가난한 내 미래는 상상하기도 싫다.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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