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탈보안

양선규 2023. 6. 25.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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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보안 하기로 했다.
 
성남의 한 회사에 신입 정보보호 기술 컨설턴트 직무로 취업에 성공하고, 근로계약서까지 썼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연봉은 동종업계 신입치곤 높았다. 만족했다.
근처에 집까지 알아보고 계약금까지 낸 상태였다.
그리고 3일 뒤, 회사에 연락해 출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직종변경이라고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했다.
집 계약도 취소했다. 계약금은 돌려받기 어려울 것 같다. 역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여기까지 와서 탈보안 하는 이유는 정보보안의 어두운 미래 때문이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
만년 유망직종이라고 하지만, 급여는 너무나도 형편없다. 
공부량에 비해, 노력에 비해, 기술의 난이도에 비해 정말 너무나도 턱없이 낮은 급여다.
안다. 정보보안의 수익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또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에 하고 싶었고,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려고 했다. 가시밭길 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힘든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
 
그런데 ....굳이?
개발 쪽으로 가면, 더 높은, 어쩌면 훨씬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보안을 해야 할까?
초반, 중반, 후반 모든 부분에서 보안보다 압도적으로 위에 있는데.
난 노력으로 보안쪽에서 성공하려고 했지만, 노력에 대한 리턴값마저 개발이 더 높다.
정보도 많다. 이직할 회사도 많다. 대우도 좋다. 실력있는 개발자는 기업에서 앞다투어 데려간다.
보안에서 할 노력을, 개발에서 한다면 난 훨씬 빨리, 훨씬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보보안을 좋아한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내 인생을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하려고 했었지만.. 그만둔 이유는....
 
근로계약서를 보면서 두려웠다. 앞으로 매일매일 퇴근 후 공부, 주말에 공부할 생각에.
아니, 정확히는 "리턴값이 형편없는 노력"을 할 생각에 두려웠다.
힘든 건 상관없다. 명확한 기댓값이 있다면 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그 노력을 개발에서 한다면...
 
우리나라에 규모가 있는 정보보안 회사는 안랩밖에 없다. 안랩마저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이다.
이글루, 윈스 등 규모가 조금 있는 회사 몇 개 제외하고는 전부 작은 중소기업들이다.
보안을 하는 사람은 좋은 회사에 취업할 곳이 없다.
그래서 작은 정보보안 회사에서 시작해서 경력을 쌓아,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정보보안 담당자로 이직하는 게 거의 유일한 성공 방법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걸 노린다. 큰 회사로 이직하지 못하면, 내가 아무리 해킹을 잘하든 뭘 잘하든 평생 박봉인 것이다.
모두가 큰 회사를 노리기 때문에 다들 공부에 전념한다.
모두가 큰 회사를 노리기 때문에 엄청난 바늘구멍이다.
심지어 극소수만 뽑는다.
퇴근하고 공부, 주말에도 공부. 이미 공부를 하면서 다음 공부는 뭘 할까? 자격증은 뭘 딸까? 고민하고, 어떤 경험과 스펙을 쌓을까? 평생 고민한다. 대기업에 이직할 때까지, 그게 언제가 될지도 모른 채.
이직하지 않고 안주한다면 연봉상승률은 과장 조금 보태서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렇게 고생해서 대기업 보안담당자로 가더라도, 동급의 개발자보다 급여가 낮다. 연봉상승률도 낮다.
대기업에서도 굳이 보안인력의 연봉을 올려주고, 큰 돈을 주면서 인재를 데려올 이유가 없다.
어차피 잘하는 사람은 많고, 적게 주더라도 할 사람 많고,  또한 정보보안 자체가 금전적인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유지비" 느낌인 것이다.
 
공부량 많음, 공부량에 비한 리턴 낮음, 연봉 적음.
굳이 보안을 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난 예전에 보안으로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개발자 연봉에 대해선 많이 조사를 안 했었다.
그러다 최근 자세하게 찾아봤는데 초봉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승률이 장난이 아니더라(보안에 비해).
큰 기업으로의 이직도 쉽고. 실력이 있으면 대우해주고. 노력에 대한 리턴도 높고.(전부 보안에 비해서다)
중견기업 기준으로 개발자 초봉은 4000정도에 형성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다.
연마다 연봉이 오르고, 이직할때 연봉협상도 잘 한다면.. 여기에 추가적인 노력이 가미된다면 3,4년만에 잘하면 6천도 가능한 수준이다.
 
난 안랩 공채에 떨어진 후, 마땅히 갈 수 있는 큰 회사가 없어 작은 보안회사로 취직했다.
정말, 진짜로 갈 데가 없다. 큰 회사는 전부 경력이다. 당장 사람인 검색만 해봐도 나온다.
나는 보안을 한 죄로 작은 회사에 올 수 밖에 없었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다.
뭐, 당연히 내가 엄청난 고수였다면 안랩에 붙었겠지만 그런 억지스러운 얘기는 제쳐두고.
 
만약,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과 스펙이 보안이 아닌 "개발" 이었다면? 
중견기업, 대기업에 도전할 기회도 많았을 것이고(개발자를 찾는 회사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물론 공급도 많지만.)
붙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 않았을까?
 
정보보안을 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말하곤 한다.
탈보안 한다고, 지금이라도 갈아탈까 등등...
현직자 친구 피셜, 보안회사는 밥은 먹었어? 가 아니라 요새 뭐 공부해? 가 평소 인사라고 한다. 당연히 장난도 섞여있겠지만... 이런 얘기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보안 하는 사람들의 힘듦을 표현해준다.
 
머리가 아팠다. 지금까지 한걸 대부분 버려야 하니까.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보안을 선택할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거 하나 빼곤 단 한개도 없다.
 
내 인생에서의 1순위는 "돈"이다. 많은 돈을 버는 것. 좋은 차를 타는 것.
"일"은 그냥 수단일 뿐이다. 1순위를 이루기 위한 수단.
난 보안이 좋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높은 돈이 더 좋다. 1순위를 위해선 보안을 포기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내 미래를 보았을 때, "돈"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지금 개발로 갈아타는 것은 거의 100%에 수렴할 정도로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꽤 우울하다. 하지만 감정이 행동에 반영되어선 안 된다.
조금 늦어졌지만, 미래의 나는 웃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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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에 대한 기초지식은 꽤 갖추고 있으니, 백엔드 개발자를 생각하고 있다.
코딩 테스트도 준비해야 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 하고.
정보처리기사도 옵션 느낌으로 따 놓으려고 한다.
 
예전에 한창 백준 문제를 풀었었다. 실버2인가 실버1인가.. 그랬던 것 같다. 코딩을 아예 안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코딩테스트 문제들은 어우.. 차원이 다른 느낌이라 막막하다.
또한 그때는 파이썬을 썼었다. 하지만 백엔드 전향을 위해 자바를 준비해보려 한다.
포트폴리오로는.. 웹 서비스를 통째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개발에 대해 여러가지 알아봤는데.... 처음 듣는,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정말정말 많다.
공부할 게 산더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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