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에 취업을 했다.
채용공고가 있는지도 몰랐었고, 정글 동기들 덕에 마감 30분 전에 채용공고를 처음 확인했다.
설립된 지 7개월 된 스타트업. 대부분이 개발자로 이루어진 인원 수 40명 규모의 회사. 위치는 삼성역.
1개월짜리 인턴, 그리고 도전적인 내용의 채용공고. 정규직 전환 시 연봉도 만족스러웠다.
채용공고의 뉘앙스는 이랬다. 워라밸이 중요한 개발자를 찾지 않는다,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람을 찾지 않는다. 집요하게 일하고 성과를 내고 성과에 맞는 보상을 챙겨갈 사람을 찾는다. 이런 느낌. 회사가 설립된지 7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매우 바쁠 것으로 예상된다. 매우 바쁘지만 그만큼 성과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하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보단 좀더 도전적이게 살고 싶은 나로서는 매우 끌리는 공고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메멘토AI에 연봉 4천으로 입사해서 6개월만에 8천을 받는 개발자들도 있다고 하고.
전형은 서류 -> 코딩테스트 -> 화상면접 순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난 아직까지 이력서를 어딘가에 제출할 생각이 없었다. 포트폴리오가 미완성인 상태라서 완성한 후 천천히 지원해 보려고 했는데, 채용공고를 마감 30분 전에 확인하고 이 회사의 도전적인 채용공고에 동질감과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자소서를 20분만에 급하게 쓰고 이력서는 예전에 썼던 거 그대로 내고, 포트폴리오는 미완성이니 내지도 않았다. 그렇게 마감 10분전에 이력서 제출을 하고... 미리 준비해놓지 않았던 내 자신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아마도 서류 탈락할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연락이 오지 않아 기대를 버리고 있었는데, 일주일 뒤에 서류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당일날 바로 코딩테스트를 진행했다. 코딩테스트는 메일로 문제 2개를 전달받았고, 밤 12시까지만 제출하면 되었다. 시간이 오후 1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시간은 매우 넉넉했다. 그리고 문제를 확인했는데.. 2문제를 받았고 한 문제를 골라서 자유롭게 풀면 되는 형태였다. 그런데 문제가 너무 쉬웠다. 프로그래머스 레벨 0 문제 수준이었다. 음... 당연히 쉬워서 좋긴 한데, 너무 쉬워서 좀 찝찝한 감이 있었다. 이게 코딩 테스트를 치르는 의미가 있나, 왜 이렇게까지 쉬운 문제를 주는 걸까 궁금증도 생기고.
어쨌든, 당일에 코딩테스트는 바로 합격했고 이어서 면접 메일이 왔다. 면접 시간은 원하는 시간으로 맞춰 주셔서 바로 다음날 오전 9시 30분에 봤다. 면접은 1:1 화상 면접이었고 분위기는 비교적 편안했다. 그리고 신기한 점은 기술적인 질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었냐 하면.. "우리 회사는 엄청나게 바쁘고 많이 힘들거야. 네가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까? 너는 워라밸을 포기하더라도 큰 보상을 받는 걸 지향하는 사람이니? 일에 미칠 준비가 되어있니?" 라고 묻는 느낌이었다.
물론 난 그걸 원해서 지원한 것이었기에 매우 자신있게 답할 수 있었다. 내 꿈과 열정을 열심히 어필한 것 같다. 몸이 조금 고되더라도 이제 막 급부상하는 스타트업에서 초기 멤버로 들어가 서비스를 기초부터 개발하고 한 회사가 자리잡는 과정을 전부 경험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메리트고, 그렇게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개발 실력도 엄청나게 늘 것이다. 편안한 곳에서 보낸 1년과 빡센 곳에서 보낸 1년은 그 밀도가 다르겠지. 심지어 성과를 낸 만큼 보상, 즉 돈을 확실하게 준다고? 이건 안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장시켜주는데 돈도 많이 준다니. 내가 이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정글에 지원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고되지만, 확실한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
결국 면접 본 당일 오후 5시쯤에 최종합격 메일이 왔고, 입사하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뭔가 운으로 붙은 느낌도 없잖아 있는데... 뭐 기회를 잘 잡았다고 생각하겠다. 다만 의아한 부분들은, 이번 인턴 채용은 약 30명을 채용하는 데다가, 채용 과정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많이 채용하는 이유도 궁금하고, 서류를 어떻게 통과했는지도 모르겠고, 코딩 테스트는 너무 쉬웠고, 면접에선 기술적인 것을 하나도 물어보지 않으셨다. 물론 내가 열정 어필을 잘 하긴 했지만 개발자를 채용하는데 기술적인 것을 하나도 물어보지 않는다는 건 조금 이해하기 어렵다. 굉장히 얼떨떨하고 이게 맞나...? 싶다. 물론, 일 하는 만큼 월급만 준다면 전혀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채용하는 이유를 유추해 봤는데, 지금 메멘토AI는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에 실제로 개발자가 대량으로 필요한 상황이고, 그렇다고 전부 정직원으로 채용해 버리면 이 빡센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 분명 나올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필터로 인턴 1개월이라는 기간을 둔다는 것. 회사 입장에서는 시험, 우리 입장에서는 체험이 되겠지.
그리고, "워라밸보단 성과에 대한 보상을 중요시하는 성향"과 "열정"을 1순위로 본다는 것. 마지막으로, 어차피 신입 개발자는 거기서 거기라는 걸 알기 때문에 키워서 쓸 생각으로 코딩 테스트는 최소한의 난이도로 출제했고 면접에서는 기술적인 것보단 성향과 열정을 중심으로 보았다는 것. 물론 전부 내 뇌피셜이긴 하지만... 대충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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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괜찮은 스타트업의 개발자로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아직 정직원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할 거니까 될 거라고 믿는다. 될 거라고 가정하고 글을 써 보자면, 정보보안을 포기하고 개발자로 전향한지 약 1년 3개월 정도가 지났다. 포기할 당시, 나는 1년 정도의 시간이 있다면 개발자로 전향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물론, 본격적으로 개발 공부를 하면서 이것은 꽤 어려운 목표였다고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 개발자 취업 시장이 워낙 빡빡하니까, 그리고 내 개발 경력은 턱도 없이 부족하니까. 어찌되었든 난 최선을 다했고, 1년 3개월을 꽉꽉 채워 보낸 결과 결국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작년 6월, 정보보안 중소기업의 보안 컨설팅 및 모의해킹 직무 신입으로 입사할 때 계약서에 적혀있던 연봉 3천만원. 그 금액을 보면서 기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갈 때 들던 회의감과 답답함. 공부량과 노력에 비해서 너무나도 턱없이 적게 느껴졌던 돈. 심지어 갈 수 있는 회사조차 없었던 절망감. 능력이 안돼서가 아니라 고연봉 정보보안 회사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난 도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가장 많이 주던 안랩이 3700이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고. ( 돌이켜보면 그때 면접 참 형편없이 봤다... 인생 첫 면접이었으니까. ㅋ )
정보보안을 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난 초봉으로 3천밖에 받을 수 없고, 앞으로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정보보안 직무 특성상 평생을 대우받지 못할거라는 절망감. 노력의 의미가 쇠퇴되는 것을, 될 것이라는 것을 기차 안에서 격렬히 느낀 다음날 바로, 나는 입사를 포기하고 개발자로 전향했다. 처음엔 인생의 꿈이었던 해커를 돈 때문에 포기했다는 게 참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개발 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이쪽에 정과 재미가 많이 붙었다. 정보보안의 현실을 파악한 나는 망설이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보안을 포기했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곧은 직진을 했다.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목표를 달성한 지금 굉장히 감회가 새롭다. 내 판단과 지나온 1년 3개월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정보보안을 포기하고 개발자로 전향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잘한 선택이다. 내가 작년에 보안을 포기할 당시 쓴 글, "탈보안"에서 말했다. 개발자로의 전향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한 목표를 가진 나에게 있어서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라는 것. 나는 스스로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이루어 냈다.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확실하게 목표에 도달했다. 드디어 노래, 정보보안, 개발 3연속 도전을 하면서 징그럽게 길고 길던 취업 준비가 끝났고, 단 한 걸음만 뻗으면 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돌고 돌아 왔지만 지나온 내 인생은 한 점 후회가 없다. 모든 게 내 선택이었다. 각각의 단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고, 결국 여기까지 왔다.
개발자로 전향하여 연봉을 올린 것 자체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난 내 미래를 통째로 바꿨다. 1년 3개월 이라는 가치로, 희망찬 미래를 산 것이다.
이건 위에서 언급한, 작년 정보보안을 포기할 당시 상황과 심정을 기록한 글인 탈보안이다.
https://yskisking.tistory.com/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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